방황하는 제자를 성악가로,
영화 <파파로티> 실제 주인공 서수용 선생님
믿음을 주는 사람
서수용이 전하는 응원가
땅 밑에 꽃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새싹이 비집고 나올 작은 틈이 돌멩이로 막혀 있다면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만약 그곳에서 싹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씨앗의 잘못이 아닙니다. 돌멩이를 치워주지 않은, 길을 지났던 모든 사람의 책임이지요.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 학생들은 바로 그 씨앗입니다. 주먹을 쓰든, 담배를 피우든, 부모가 없든 마찬가지입니다. 돌멩이가 보이면 누구라도 치워주세요. 그 자리에 예쁜 꽃이 피게 될 겁니다. 바로 호중이처럼요.
서수용 씨(53세)는 아차 싶었다. 학교를 관둬야 할 처지에 놓인 제자가 있는데, 성악에 재능이 있으니 한번 봐달라는 후배의 부탁에 나간 자리였다. 그런데 나온 아이는 머리 대신 어깨를 숙였다. 일명 ‘조폭식 인사’. ‘저런 놈이 노래?’마음으론 가위표를 쳤지만 예의상 한 곡 들어보자며 녀석을 연습실로 데려갔다. “그때 선곡한 곡이 ‘별은 빛나건만’이에요. 오전 열 시에, 목도 안 풀고는 부를 수가 없는 곡인데 부르는 거예요, 심지어 엄청 잘해요.”
경북 김천예고 음악 교사인 서수용 씨와 제자 김호중 군(22세)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파파로티>의 도입부도 같은 내용이다. 영화는 둘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벌써 5년 전의 일이지만, 서 교사는 그때를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 “얘를 당장 데려와야겠는데, 학교에서 반대가 심했죠.” 그도 그럴 것이 호중이의 생활기록부가 화려해도 너무 화려했다. 출석수보다 무단결석, 무단조퇴, 무단지각 횟수가 더 많은데다 학교 폭력은 물론 조직폭력배에까지 연루돼 있었다. “내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꽤 배포 있는 선언을 하고 서 교사는 호중이를 데리고 온다. 대신 호중이에게 두 가지 약속을 받는다. 하나, 무단결석을 하지 않는다. 둘, 폭력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동거는 순탄치 않았다. 성악이야 하나를 가르치면 다섯, 열을 알았지만 조직(?) 생활을 하는 호중이는 걸핏하면 밖으로 돌았다. 하지만 서 교사도 보통은 아니었다. 매일 호중이를 김천의 학교로, 대구의 집으로 직접 등하교시켰다. 그 정성에 호중이는 스스로 조직에서 나와 성악에 매진하게 되었고 나가는 콩쿠르마다 1등을 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호중이가 사라졌다.
“제가 바빠서 콩쿠르를 지도하지 못했는데, 예선에서 탈락한 호중이가 제 연락도 받지 않고 무단결석을 장장 15일이나 한 거죠.” 갖은 수소문 끝에 만난 호중이가 꺼낸 말은 “전학 가겠습니다”였다. “저에게 실망했을 테니, 예전처럼 지낼 수 없잖아요. 선생님이 버리기 전에 제가 떠날게요.” 비로소 이 아이가 부모 없이 살며 얼마나 외로웠을지, 믿어주는 이가 없어 얼마나 퍽퍽했을지 알게 된 서 교사는 호중이를 용서하는 대신 위로했다. “인마, 너는 네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훨씬 훌륭한 테너가 될 수 있어. 너는 분명 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될 거야. 선생님을 믿어봐.” 부둥켜안은 스승과 제자는 한참을 울었다.
그날 이후 호중이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아이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며 서 교사는 단계별 목표곡을 준다. “마지막으로 졸업 전에 불러보라고 한 곡이 파바로티의‘네순 도르마(공주는 잠 못 이루고)’예요. 난곡(難曲) 중의 난곡이지만, 테너라면 누구나 욕심내는 곡이죠. 저 역시 무대에서 불러보지 못한 노래고요.” 하지만 호중이는, 단 3개월 만에 해냈다. 나를 넘어서는 제자가 부럽고, 그 앞에서 부끄럽기도 했던 스승은 그 순간 ‘이제 됐다’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
오랜만에 스승과 제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났다. 경상도 사내들답게 “야” “쌤요”라는 무뚝뚝한 말 몇 마디를 나누고 그들은 곧 헤어졌다. 서 교사는 ‘제2의 호중이’가 기다리는 학교로, 국내 매니지먼트사와 계약을 체결한 호중 군은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실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각자의 길을 걸어갈 테다. 하지만 “한 번도 호중이를 포기해본 적 없었다”는 스승과 “늘 선생님은 곧 아버지였다”는 제자 사이의 정(情)과 의(義)는 계속된다. 믿음이라는 끈은 여전히 둘을 단단하게 잇고 있다.
글·사진 송은하 기자
유투브(www.youtube.com)에서 ‘김호중’을 검색하면 호중 군의 무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 : 월간샘터 2013년 5월호 (http://www.isamtoh.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