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명의도용 사기사건을 막아라”
신용평가팀 추현규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가을, 명절 직전의 어수선함 속에 부산에 있는 수출자가 상담을 원한다는 메모를 전달받았습니다. 메모에는 수출자가 자신이 거래하는 수입자와 공사 신용조사보고서상 수입자가 다른 것 같아 상담을 원한다는 짤막한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수출자가 상담을 원하는 내용은, 우리가 판단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닌지라, 수출자 스스로 잘 판단하시라고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가벼이 여기고 수출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출자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상담 한번 받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영국 소재 수입자가 메일로 거래를 요청하여 신용조사 보고서도 받아보고, 중소중견플러스 보험에 가입도 해있으나, 명의도용 사기건일 경우 보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걱정되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라는 제 물음에, 국외기업 신용조사 신청을 할 때 뜨는 배너내용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며,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최근 몇 년간 유럽 등 선진국 소재 수입자를 사칭하고, 아프리카 등으로 선적을 요청하는 명의도용 사기사건으로 우리 수출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여, 신용평가팀에서는 신용조사 신청 시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 주의하시게끔 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본인의 사례가 그런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입자가 먼저 수출자에게 이메일로 컨택을 시작하여 거래를 제시하였고, 영국 기업임에도 케냐에 Branch가 있다며 케냐로 선적을 요구했다고 했습니다. 고객께서는 아무래도 첫 거래인지라 조심스러워 국외기업 신용조사 보고서 확인 후, 수입자가 부동산 개발업을 하고 있으니, 직접 건설을 하기 위해 공업용 고무롤을 주문하는구나 여기고 거래를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명의도용 사기사건 피해예방 배너가 머리를 맴돌아,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연락을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통화를 하면서 아, 이건 분명히 정상적인 거래가 아닐 가능성이 높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추가 확인을 해보고 연락을 드리기로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우선, 수출자가 전달해준 수입자와의 메일상 확인되는 수입자 메일 주소의 도메인으로 수입자 홈페이지에 접속하였습니다. 건설과 관련된 깔끔한 홈페이지였으나 메인에서 상세 페이지로 들어가는 ‘Learn More’ 버튼들이 비활성화 되어 있어 수상한 느낌이 들었고, 메인화면의 모든 배너를 클릭을 해보던 중 드디어 상세 페이지로 연결이 되는 버튼을 하나 찾았습니다. 그런데 넘어간 페이지는, 해당 업체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회사였습니다. ‘다른 회사 홈페이지를 가져다가 위장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 주소창을 확인하니, 홈페이지 제작을 도와주는 디자인 플랫폼 회사의 도메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홈페이지는 플랫폼 회사에서 운영하는 샘플 홈페이지였고, 수입자는 샘플 홈페이지 메인 페이지만 그대로 가져다가, 수출자와 연락하는 연락처만 확인이 되도록 만들어놓았던 것입니다. 또한, 한국인터넷진흥원 도메인 정보조회 사이트에서 확인한 결과, 해당 홈페이지는 2021년 3월에 개설된 것으로, 2013년에 설립된 순자산 GBP 5천만 수입자의 홈페이지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이나 이것만으로 명의도용 사기라고 보기는 어려워, 수입자가 제공한 P/O상 수입자 대표자 서명의 진위 확인이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영국의 경우, 등기소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영국기업의 대표자, 사업자등록번호, 업종 등을 확인할 수 있고, 기업들이 업로드한 재무제표, 각종 신고서류 등도 확인이 가능하기에, 등기소에 업로드된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본 결과, 2014년 등기소에 제출된 대표자 변경 신고서류상의 서명과 P/O상 서명이 상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확인이 되자, 정황상 무역사기건으로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에, 수출자께 홈페이지의 허술함, 수입자의 업종과 거래물품이 맞지 않는 점, 대표자 서명 불일치 등을 안내드리고, 수출자가 수입자와 교신한 메일에는 수입자의 재무제표도 있었는데 이런 정보들은 수출자의 신용을 얻기에는 유용하나, 모두 영국 등기소 홈페이지에서 누구라도 확인이 가능한 문서일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설명하며, 우선 거래 중단을 권고하였습니다.
하지만, 매출액 18억 규모의 중소기업에게 14만 달러 상당의 거래는 결코 작은 거래가 아니기에, 해당 수입자가 사기 수입자라는 정확한 증빙은 없는 상태에서 이대로 마무리 짓기에는 조사가 미흡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은, 파리지사 앞 진성수입자 앞 컨택을 요청하였습니다.
파리지사에서는 진성수입자 소재지로 등기우편을 발송하여 해당 거래를 진행한 바 있는지, 홈페이지 운영 중인지 등을 질의하였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회신이 오지 않아 추가 확인 방법을 고심하던 차에, 한 달 여만에 이메일 회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진성수입자는 홈페이지 운영하고 있지 않으며, 한국수출자와 거래도 하지 않았음을 확인해주어 이로써 해당 거래가 사기가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담 전화를 받은 지 한 달여 만에, 명의도용 무역사기건에 대한 조사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거래를 하는 수입자가 보고서상 진성수입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몫은 여전히 수출자에게 남아있지만, 그 판단의 과정에서 충분히 의심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명의도용 사기수출 피해 예방 캠페인, 그리고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어준 우리 팀 전체와 파리지사의 노력이, 우리 기업의 사기피해를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이 너무나 뿌듯했던 경험이었습니다.